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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아름다운 궁 경복궁 대한민국 사적 제117호
관람시간
1월 ~ 2월 : 09:00 ~ 17:00 (입장마감 16:00)
3월 ~ 5월 : 09:00 ~ 18:00 (입장마감 17:00)
6월 ~ 8월 : 09:00 ~ 18:30 (입장마감 17:30)
9월 ~ 10월 : 09:00 ~ 18:00 (입장마감 17:00)
11월 ~ 12월 : 09:00 ~ 17:00 (입장마감 16:00)
매주 화요일은 휴궁일입니다. 휴궁일이 공휴일(대체공휴일 포함)과 겹칠 경우 개방하며, 이 경우 개방한 공휴일 다음의 첫 번째 비공휴일을 휴궁일로 합니다.
관람요금
일반권
내국인 | 대인 (만 25세 ~ 만 64세) | 3,000원 (10인 이상 2,400원) |
소인 (만 24세 이하) | 무료 | |
종로구민 (증빙자료 필참) | 50% 할인 | |
외국인 | 대인 (만 19세 ~ 만 64세) | 3,000원 (10인 이상 2,400원) |
소인 (만 18세 이하) | 무료 | |
무료 | - 만 65세 이상 - 한복착용자 - 매월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 |
- 증빙자료 필참 |
기타 무료 | 관람요금 감면대상자 |
특별권
구분 | 이용시간 | 관람요금 | 비고 |
궁궐 통합관람권 | 3개월 중 1회 (관람시간내) |
대인 10,000원 |
- 구매일로부터 3개월간 사용가능 - 4대궁 및 종묘 매표소에서 구입가능 - 환불 : 구입한 궁에서만 환불가능 |
단, 창덕궁 후원 특별관람의 경우, 입장 인원에 제한이 있어 통합관람권을 구매하였어도 관람당일 매표소에서 현장구매표로 선착순 교환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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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 관람권 | 한달 중 언제나 (관람시간내) |
30,000원 | - 구매일로부터 1개월간 사용가능 - 사진 1매 제출 - 구입한 고궁만 입장가능 |
점심시간 관람권 | 3개월간 12:00 ~ 14:00 |
5,000원 | - 구매일로부터 3개월간 사용가능 (10회 한정) - 구입한 고궁만 입장가능 |
시간제 관람권 | 1년간 12:00 ~ 13:00 |
50,000원 | - 구매일로부터 1년간 사용가능 - 경복궁만 가능 |
100,000원 | - 구매일로부터 1년간 사용가능 -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 14개능 입장가능 - 동반 1인 무료 |
주차요금
- 주차장 운영시간 : 06:00 ~ 23:00
- 장애인주차장 : 지상주차장
- 버스 50대(지상), 승용차 240대(지하)
기본
구분 | 기본 2시간 | 초과요금 (매 10분) | 회전시간 (30분) |
소형차 | 3,000원 | 800원 | 무료 |
중/대형차 | 5,000원 | 800원 | 무료 |
※단, 소형차량이 지상주차장 이용시 중/대형차 요금 적용
요금감면 (중복할인 불가)
구분 | 내용 | 비고 |
감면 (80%) | - 장애인 차량 - 국가유공자 차량 |
국가에서 발급한 증명서 또는 확인서류(복지카드, 유공자증 등)를 지참하고 관련 식별표지가 부착된 차량으로 본인이 차량에 탑승한 경우 |
감면 (50%) | - 경승용차 (1,000cc 이하) - 저공해자동차 (하이브리드차 포함) - 다자녀가족 차량 (3자녀 이상) |
다자녀가족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다자녀카드, 가족관계등록부, 건강보험증 등)를 지참하고 신분증과 함께 제시하는 경우 |
감면 (30%) | - 다자녀가족 차량 (2자녀) |
1. 광화문(光化門)
(光化 : 군주에 의한 덕화(德化))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으로 조선의 *법궁(法宮)에 해당하는 궁궐의 정문이다. 다른 궁궐들의 정문과는 다르게 높은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중층구조의 누각을 세워 성곽의 성문과 같은 격식으로 장대하게 지어졌다
광화문은 중층으로 된 문루를 받치는 **기단(基壇) 석축이 세 개의 홍예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앙의 ***홍예문(虹霓門)으로는 왕이, 좌우의 홍예문으로는 왕세자와 신하들이 출입하였다. 또한 ****문루(門樓)에는 종을 걸어 시각을 알리는데 사용하였다.
광화문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건춘문 북쪽으로 옮겼다가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문루가 모두 소실되었다. 1968년에 광화문을 경복궁 정문의 위치로 다시 옮겼지만 나무를 사용하지 않고 콘크리트 구조로 복원하는 과정에서 제자리의 위치를 찾지 못하였다가 2010년에 제자리를 찾아서 원래의 모습으로 다시 복원한 것이다.
또한, 광화문 홍예 *****개판(蓋板)에는 ******'사령(四靈)'인 기린, 봉황, 거북이가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1968년 광화문 복원때 그려진 것을 모사한 것이다.
*법궁(法宮) : 임금이 거처하는 그 나라를 대표상징하는 첫번째 궁궐이자 공식 집무실 겸 공식 관저
**기단(基壇) : 집터를 잡고, 터를 반듯하게 다듬은 다음에 터보다 한층 높게 쌓은 단
***홍예문(虹霓門) : 문의 윗부분을 무지개 모양으로 반쯤 둥글게 만든 문. 아치문
****문루(門樓) : 궁문, 성문 따위의 바깥문 위에 지은 다락집
*****개판(蓋板) : 서까래나 부연 따위에 까는 널빤지
******사령(四靈) : 태평한 시대에 나타난다고 하는 네 가지의 신령한 동물로 용, 봉황, 거북, 기린
2. 근정전(勤政殿)
대한민국 국보 제223호
(勤政 : 정치를 부지런히 함)
근정전은 경복궁의 *정전(正殿) 으로 왕이 신하들의 **조하(朝賀)를 받거나 공식적인 ***대례(大禮), 또는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정전인 근정전은 궁궐 내에서도 규모가 가장 크고 격식을 갖춘 건물로 면적 또한 가장 넓게 차지하고 있다. 중층으로 된 근정전 건물은 2단의 높은 ****월대(月臺) 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전면에는 중요행사를 치룰 수 있는 넒은 마당이 있고, 그 둘레를 *****행각(行閣)이 감싸고 있다
*정전(正殿) : 왕이 나와서 조회를 하던 궁전
**조하(朝賀) : 조회의식
***대례(大禮) : 궁중에서 임금이 몸소 주관하는 모든 의식. 왕이 친히 치르는 예
****월대(月臺) : 궁궐의 정전가 같은 중요한 건물 앞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 형식의 대(臺). 궁중의 각종 행사가 있을 때 이용되며, 대개 방형(方形 - 네모반듯한 모양)의 넓은 단(壇)으로, 그 위에 지붕이나 다른 시설을 하지 않는다
*****행각(行閣) : 궁궐, 절 따위의 정당 앞이나 좌우에 지은 줄행랑
3. 사정전(思政殿)
대한민국 보물 제1759호
(思政 : 선정(善政 백성을 바르고 어질게 잘 다스리는 정치)을 생각함)
사정전은 편전(便殿)으로 왕이 평소에 정사를 보고 문신들과 함께 경전을 강론하는 곳이다. 또 *종친(宗親), 대신들과 함께 **주연(酒宴)을 즐기고, 왕이 직접 지켜보는 가운데 과거시험을 치르기도 한 곳이다.
*종친(宗親) : 왕의 부계 친척이다. 조선시대는 임금의 적자(嫡子-정실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 자손은 4대손 까지, 서자(庶子-본부인이 아닌 첩이나 다른 여자에게서 난 아들)의 자손은 3대손까지
**주연(酒宴) : 술을 마시며 즐겁게 노는 잔치
4. 강녕전(康寧殿)
(康寧 : 편안하고 건강함)
왕의 *침전(寢殿)에 해당하며 일상생활을 하는 곳이다. 내외 **종친(宗親)을 불러 ***연회(宴會)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정사와 관련한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왕이 신하들을 불러서 은밀하게 정사를 논의 하는 곳 또한 침전이다.
강녕전은 세종 때 임금이 오래 머물 곳이라 하여 규모를 크게 하여 고친 후 온돌을 수리하는 도중 화재가 발생하는 등 세 차례의 화재를 당하였다. 경복궁 중건공사 때 다시 세워졌으나 1918년 창덕궁의 침전이 소실되자 그 목재를 조달한다며 헐렸으며 1920년 창덕궁의 희정당을 짓는데 사용되었다. 지금의 강녕전은 1995년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침전(寢殿) : 잠자는 방이 있는 전각
**종친(宗親) : 국왕의 부계 친척. 임금의 적자(嫡子 : 정실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 자손은 4대손(四代孫)까지, 서자(庶子 : 본부인이 아닌 첩이나 다른 여자에게서 난 아들)의 자손은 3대손(三代孫)까지
***연회(宴會) : 축하, 위로, 환영, 석별 따위를 위하여 여러 사람이 모여 베푸는 잔치
5. 교태전(交泰殿)
(交泰 : 천지, 음양이 잘 어울려 태평을 이루다)
왕비의 *침전(寢殿) 즉 중궁전이다. 임금의 침전(寢殿)인 강녕전의 북쪽에 있다.
태조 시절에 경복궁의 주요 건물들을 처음 세웠으나, 교태전을 지은 것은 세종 때였다. 세조 때에는 신하들을 만나 나랏일을 의논하기도 하고 공적인 잔치도 열었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조선 초기엔 내전에 딸린 편전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명종 8년(1553년)에 화재로 불탔고 2년 뒤 재건했으며 명종 12년(1557년)에는 처마를 보수하여 홑처마를 겹처마로 바꾸었다.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 때 다시 불탄 뒤에는 270여년간 방치 되어 있다가 고종 4년(1867년)에 또 불탔고 고종 25년(1888년)에 드디어 재건했다. 일제강점기 이후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朝鮮物産共進會) 때엔 귀빈관으로 사용했다가 1917년 불타 없어진 창덕궁 내전을 재건할 때 조선총독부가 경복궁 내전 건물을 자재로 쓰면서 해체하고 이전하여 지금은 창덕궁의 대조전 건물이 되었다.
그 후 일제가 전국 각지에서 강제로 옮긴 석탑, 부도 등을 놓아 두었다. 계속 그런 상태가 80년 가까이 지속되다가 문화재관리국에서 경복궁 종합정비계획 사업의 일환으로 1995년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침전(寢殿) : 잠자는 방이 있는 전각
**조선물산공진회(朝鮮物産共進會) : 1915년에 열린 행사로, 일본 제국이 조선식민지배를 정당화 하기 위해 5주년 기념/축하 사업으로 벌인 일종의 지역구 박람회이다. 공진(共進 - 함께 나아간다)이라는 명칭에서 보여지듯 일제의 무단 통치 5년을 같이 발전했다는 식으로 날조하려는 것이 이 박람회의 주요 목적이었다
6. 흠경각(欽敬閣)
(欽敬 : 하늘을 공경하여 공손히 사람에게 필요한 시간을 줌)
흠경각은 세종 20년(1438년) 장영실에 의해서 건립되었다. 자동 천문시계(옥루기륜 - 절기와 시간을 알림) 및 해시계를 비롯한 각종 기상 관측 기구들을 모아 두고 연구하던 일종의 천문관이다.
7. 함원전(含元殿)
(含元 : 원기를 간직한다)
경복궁 교태전의 *부속(附屬) 건물이다. 함원전은 세종 때 불상을 모셔두고 불교 의식과 행사를 열었던 곳으로, 경복궁 내에서 유일하게 불교를 위해 지어진 공간이다.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탄 뒤 270여년간 방치 되었다가 고종 4년(1867년)에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다시 세웠지만, 고종 10년(1873년)에 또 불타 다시 지었으나 고종 13년에 또다시 불타고 고종 25년(1888년)에 재건하였다. 지금 남아있는 건물은 1995년 복원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朝鮮物産共進會) 때엔 귀빈관으로 사용했다가 1917년 불타 없어진 창덕궁 내전을 재건할 때 조선총독부가 경복궁 내전 건물을 자재로 쓰면서 해체되고 이전 되었다. 이후 80여년을 빈 터로 남아있다가 문화재관리국에서 경복궁 종합정비계획 사업의 일환으로 1995년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부속(附屬) 건물 : 어떤 건물에 딸려 있는 건물
**조선물산공진회(朝鮮物産共進會) : 1915년에 열린 행사로, 일본 제국이 조선식민지배를 정당화 하기 위해 5주년 기념/축하 사업으로 벌인 일종의 지역구 박람회이다. 공진(共進 - 함께 나아간다)이라는 명칭에서 보여지듯 일제의 무단 통치 5년을 같이 발전했다는 식으로 날조하려는 것이 이 박람회의 주요 목적이었다
8. 자경전(慈慶殿)
대한민국 보물 제809호
(慈慶 : 자친(어머니)이 복을 누린다)
자경전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고종의 양어머니가 되었던 조대비(신정왕후)를 위하여 지은 건물이다. 건물을 지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재로 소실된 것을 고종 25년(1888년)에 다시 지어 지금까지 남아있다.
9. 동궁
동궁은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생활공간이며, 왕세자의 교육이 이루어지던 곳이다. 세자궁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자선당(資善堂 - 資善 : 착한 성품을 기른다)과 비현각(丕顯閣 - 丕顯 : 덕을 크게 밝히다, 크게 드러나다)이 주 전각이고,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세자시강원(춘방)과 경호 임무를 수행하던 세자익위사(계방)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복궁 창건 시에는 궁내에 동궁이 마련되지 않았었으며, 세종대(1427년)에 와서 창건된다. 자선당에서는 문종이 세자시절 단종을 낳기도 했고, 고종대 경복궁 중건 후에는 순종이 거처를 하였다. 현재의 동궁은 1999년 자선당과 비현각 영역만 복원이 되었다.
10. 흥복전(興福殿) 과 함화당·집경당
흥복전(興福殿 - 興福 : 복을 일으킨다)
흥복전은 왕의 후궁들이 살던 공간인 빈궁(嬪宮)이다. 궁궐 내 여성 내명부에 적절한 소임을 주고 독립된 건물채인 각 전(殿)에 배속시키는 본부 역할을 했으며, 외국 사신을 만나는 편전으로도 활용됐다. 고종의 양어머니가 되었던 조대비(신정왕후)가 이 곳에서 *승하(昇遐)하였다. 1917년 화재로 소실된 창덕궁을 중건하기 위해 흥복전 일곽이 철거됐으며,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는 일본식 정원을 만들었다. 문화재청은 경복궁 복원 2차 계획 사업의 일환으로 2015년 9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약 3년 3개월에 걸쳐 복원 공사를 진행했다. 단청은 아직 칠하지 않았는데, 단청 연구를 한 뒤 2024년 쯤 칠할 예정이라고 한다
*승하(昇遐) : 임금이나 존귀한 사람이 세상을 떠남을 높여 이르던 말
함화당(咸和堂 - 咸和:모두가 화합하다)
고종때 세워진 것으로, 집경당과 가운데 3칸의 복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집경당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외국 사신들을 접견하기도 하였다
집경당(緝敬堂 - 緝敬 : 계속하여 공경한다)
고종때 세워진 것으로, 함화당과 가운데 3칸의 복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함화당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주변에 담장을 두르고 여러 채의 부속 건물과 문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없어졌고 현재 복원 사업이 진행 중이다. 주로 침전(寢殿)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고종이 향원정 뒤에 건청궁을 짓고 머물 당시에는 집경당과 함화당에서 외국 사신들을 접견하기도 하였다
12. 향원정(香遠亭)
대한민국 보물 제1761호
(香遠 : 향기가 멀리 간다)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옛 후원인 서현정 일대를 새롭게 조성하였는데 연못 한가운데 인공의 섬을 만들고 그 위에 육각형 정자를 지어서 '향기가 멀리 퍼져나간다'는 향원정(香遠亭)이라 불렀다. 향원지를 건너는 다리는 '향기에 취한다'는 뜻의 취향교(取香橋) 이다. 취향교는 조선시대 연못에 목교로는 가장 긴 다리이다. 취향교는 북쪽에 있어 건청궁 쪽에서 건널 수 있었다. 향원지의 물은 경회루의 *연지(蓮池)로 흘러가도록 되어 있다.
*연지(蓮池) : 연꽃을 심은 못
13. 건청궁(乾靑宮)
(乾靑 : 하늘은 맑다)
건청궁은 경복궁이 중건되고 5년이 지나서 고종 10년(1873년)에 와서 지어진 건물이다. 경복궁에서 가장 북쪽 한적한 곳에 위치한다. 왕과 왕비가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면서 거처할 목적으로 지어졌다. 앞에는 향원지라는 큰 연못을 파고 연못 가운데에 정자를 꾸몄다. 건물은 민간 사대부 집의 형태를 따르면서 화려하고 섬세한 치장을 가미하여 지었다. 왕이 사용하는 장안당(長安堂 - 長安 : 오랫동안 평안하게 지내다)과 왕비가 머무는 곤녕합(坤寧閤 - 坤寧 : 땅이 편안하다), 그리고 장안당 뒤에 서재로 관문각(觀文閣 - 觀文 : 글을 보다)을 지어서 마치 사대부가의 사랑채, 안채, 서재를 연상시키는 구성을 하였다.
고종은 이곳을 좋아하여 왕비와 함께 자주 머물렀으며 왕과 왕비가 거처하지 않을 때에는 역대 임금의 초상화를 모시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건물은 조선말기 정치적 혼란의 장소가 되고 말았다. 고종은 이곳에서 미국, 영국, 러시아 등의 공사들을 접견하면서 여러 정치적인 문제들을 처리해야 했다. 그 사이에 서재인 관문각은 러시아인에 의해서 2층 벽돌조 건물로 개조되기도 하였다. 궁 안에 최초로 전등이 설치된 곳이기로 하다. 1895년 일본인들이 궁궐을 습격해서 명성황후를 시해한 것(을미사변)은 이 건물 곤녕합의 누마루인 옥호루(玉壺樓 - 玉壺 : 옥으로 만든 호리병)였다. 이 사건 이후 건물은 방치되었다가 철거 되었고, 2006년에 와서 다시 옛 모습대로 복원되었다
14. 집옥재(集玉齋) 일원
(集玉 : 보배를 모으다)
집옥재, 협길당, 팔우정 이 3채의 건물은 당초 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으로 지어진 건물이었으나, 1888년 고종이 창덕궁에서 경복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이 전각들도 옮겨온 것이다. 고종은 이 건물들을 어진의 봉안 장소와 서재 겸 외국사신 접견장으로 사용 하였다. 이 3채의 건물은 경복궁의 다른 전각들과 달리 중국식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신식이라고 생각되던 중국풍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15. 태원전(泰元殿) 일원
(泰元 : 하늘)
경복궁의 서북쪽 일대는 *빈전(殯殿)이나 **혼전(魂殿), ***영전(靈殿) 같은 제사와 관련된 전각들이 있었다.
태원전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시던 건물이며, 나중에는 빈전이나 혼전으로도 쓰였다.
태원전 건물은 20세기 초에 철거되었다가 지금 옛 모습대로 건물이 복원되었다
*빈전(殯殿) : 왕실에 돌아가신 분이 있을 때 관을 모셔두는 곳
**혼전(魂殿) : 종묘에 모실 때까지 만 2년 동안 위패를 모시는 곳
***영전(靈殿) : 돌아가신 분의 초상화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
16. 경회루(慶會樓)
대한민국 국보 제224호
(慶會 : 경사스러운 연회)
경회루는 침전영역 서쪽에 위치한 연못 안에 조성된 *누각(樓閣)이다. 외국사신의 접대나 임금과 신하 사이에 벌어지는 연회장소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작은 누각이었던 것을 태종 12년(1412년)에 크게 연못을 파고 지금과 같은 규모로 만들었다. 그 후 성종 때 건물이 기울어져 다시 고쳐 지었는데 돌기둥에 용과 꽃 장식을 하여 화려하게 치장하고, 연산군 때에는 연못 안에 인공섬 만세산(萬歲山)을 조성하고, 그곳에 월궁(月宮)을 꾸며 조화를 장식하였지만, 임진왜란 때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다. 경회루 건물은 없어졌지만, 경복궁이 중건될 때까지 연못은 나라에 가뭄이 들 때마다 기우제를 지내는 곳으로 이용되었다.
지금의 경회루는 고종 4년(1867년)에 중건된 것이다. 경회루는 중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누각(樓閣) :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문과 벽이 없이 다락처럼 높이 지은 집
17. 수정전(修政殿)
대한민국 보물 제1760호
(修政 : 정사를 잘 수행함)
경회루 연지 남쪽에 위치한 수정전은 세종대에 집현전이 위치한 *궐내각사지역에 고종대에 새로 지은 전각이다. 고종대 초기에는 임시로 편전의 역할도 하였으며, 갑오개혁(1894년) 당시 내각 본부인 **군국기무처로 사용되었다.
*궐내각사(闕內各司) : 임금 보좌 또는 왕실 업무와 직접 관계된 관청으로, 궁궐 내부에 위치한 관청으로 승정원(承政院 국왕의 비서기관), 홍문관(弘文館 왕의 자문 역할을 하던 관청), 예문관(藝文館 조선시대에 왕의 말이나 명령을 담은 문서의 작성을 담당하기 위해 설치한 관청) , 내의원(內醫院 궁중의 의약을 맡아보던 관청) 등의 관청이 궐내각사에 포함된다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 : 청·일전쟁 때 관제를 개혁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했던 관청. 갑오개혁의 중추적 역할을 한 기관으로, 정치·군사에 관한 일체의 사무를 관장
18. 소주방(燒廚房)
조선시대 임금과 왕비 등 왕실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들던 곳으로, 수라상을 비롯해 왕실 잔칫상 등을 만들었던 부엌이다. 흔히 수라간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