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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야경을 즐길 수 있는 고궁  덕수궁     사적 제124호

 

서울에 가볼만한 곳 서울의 궁 덕수궁

 

 

 

 

※덕수궁에는 주차시설이 없습니다.

 

 

덕수궁

덕수궁의 옛 이름은 경운궁으로 1897년 선포된 황제국 그러니까 대한제국의 황궁입니다.  고종의 거처로 활용된 곳입니다.  근대식 건물인 석조전이 있어 동서양의 건축양식이 공존하는 경관을 볼 수 있습니다.  덕수궁은 야간관람이 가능해서 저녁에 방문한다면 화려한 단청과 고즈넉한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해가 지고 선선한 저녁에 산책을 즐겨보는 것도 꽤나 즐거울 것 같습니다.

운영시간 : 09:00 ~ 21:00 (입장마감은 1시간 전)

정기휴무 : 매주 월요일 (휴무일이 공휴일일 경우 익일 휴무)

 

 

덕수궁은  임진왜란(1592년)이 발발하자 의주로 피난 갔던 선조가 한양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월산대군 저택과 그 주변 민가를 여러 채 합해서 『시어소』로 정하여 행궁으로 삼았던 것부터 시작됩니다.  이후에 광해군이 즉위하고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경운궁'이란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궁궐의 모습을 갖춘 덕수궁은 인목대비의 유폐와 인조반정을 겪으면서 규모가 축소되었고, 특히 인조가 즉위한 이후 즉조당과 석어당을 제외한 나머지는 원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이로써 덕수궁은 더 이상 왕이 공식적으로 머물며 국정업무를 보던 궁궐의 기능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을미사변(1895년)이 일어난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후, 1897년 2월에 덕수궁으로 환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대한제국이라는 황제국을 선포한 후 황궁으로서의 규모와 격식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덕수궁 대화재(1904년)와 고종의 강제퇴위(1907년) 이후 덕수궁은 그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습니다.  이때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이름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시어소(時御所) : 임금이 임시로 지내던 궁전 

*행궁(行宮) : 왕이 본궁 밖으로 나가 머무는 임시장소로서의 궁궐로 이궁(離宮) 이라고도 한다

 

 

 

덕수궁 관람 요금

■내국인

구분 대상 개인 단체 (10인 이상)
일반권 만 25세 ~ 만 64세 1,000 800

■외국인

구분 대상 개인 단체 (10인 이상)
일반권 대인 (19세 ~ 64세) 1,000 800
무료관람 - 만 18세 이하 / 만 65세 이상
-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
- 한복을 착용한 자   

■특별권

구분 이용시간 관람요금 비고
궁궐통합관람권 관람시간 내  10,000 -구매일로부터 3개월 이내 사용 가능 (1회 한정)
-4대궁 및 종묘 관람권 포함
상시관람권 관람시간 내  10,000 -구매일로부터 1개월간 사용 가능
-사진 1매 제출
시간제관람권 12:00 ~ 13:00  30,000 -구매일로부터 1년간 사용 가능
-덕수궁/창경궁만 관람 가능
100,000 -구매일로부터 1년간 사용 가능
-덕수궁/창경궁/경복궁/14개능 관람 가능
-동반 1인 무료입장
점심시간 관람권 11:30 ~ 13:30    3,000 -구매일로부터 3개월간 사용 가능 (10회 한정)

※석조전 대한제국 역사관 관람은 별도로 인터넷 사전예약을 해야 관람 가능

※덕수궁 미술관을 이용하실 분은 덕수궁의 관람권과 미술관의 관람권을 별도로 구입해야 함

 

■무료관람 및 할인

구분 대상
무료관람 -국빈 및 그 수행자
-외교사절단 및 그 수행자
-만 24세 이하 및 만 65세 이상 내국인 (단, 외국인은 만 18세 이하 및 만 65세 이상)
-국·공립기관에서 정양 중에 있는 상이군경
-공무수행을 위하여 출입하는 자
-학생인솔 등 교육활동을 위해 입장하는 초·중·고 교원 (유치원 및 보육시설 교사를 포함)
-한복을 착용한 자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등록장애인 및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의 동행보호자 1인
-【독립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에 따른 독립유공자 및 배우자, 애국지사, 선순위 유족
-【국가유공자등예우및지원에관한법률】에 따른 국가유공자 및 배우자,
 상이(장애) 1~3급자와 동행하는 보조인 1인, 선순위 유족
-【5.18민주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에 따른 5.18민주유공자 및 배우자, 선순위 유족
-【특수임무유공자예우및단체설립에관한법률】에 따른 특수임무유공자 및 배우자, 선순위 유족
-【참전유공자예우및단체설립에관한법률】에 따른 참전유공자
-【고엽제후유의중등환자지원및단체설립에관한법률】에 따른 고엽제후유증등외자 및 수당지급 후유의증환자
-【관광진흥법】제2조 제12호에 의한 문화관광해설사 자격증 및 제38조에 따른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패용하고 단체관람객 인솔하고 안내를 위해 입장하는 자
-【효행 장려 및 지원법】제10조에 따른 효행우수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제2조에 의한 기초생활수급자 및 동법 제2조 제11호에 따른 차상위계층 중 자활급여,
 건강보험료 경감대상, 장애수당, 한부모 가정 중 하나 이상의 급여를 받고 있는 자 및 기타 보건복지부장관이
 인정한 차상위계층
-기타 개별법령에 의하여 입장료가 감면된 자
-병무청 발급 병역명문가증 소지자 (본인에 한함)
-현역 군인 (사복착용시 휴가증 등 증명서 제시)
-다자녀를 둔 부모로서 지방자치단체에서 발급한 "다자녀(다둥이) 카드"를 소지한 부모
-【모자보건법】제2조에 따른 임산부와 보호자 1인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및 전수교육조교
-문화재위원 및 전문위원
-기타 궁능유적본부장 또는 해당 궁능유적기관의 장이 인정하는 자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

※반드시 매표소에 증명서를 제시하고 무료관람권을 발급받아 입장
할인 중구민 50% 일반관람료 할인
※할인 대상자는 반드시 신분증 또는 등본 등의 증빙서류 제시

 

 

 

 

 

 

 

 

 

 

 

 

덕수궁 대한문(大漢門)

1. 대한문(大漢門)

(大漢 : 한양이 창대해진다)

덕수궁의 정문 입니다.  궁궐의 정문은 원래 남쪽으로 난 인화문 이었는데, *환구단 건립 등으로 경운궁의 동쪽이 새로운 도심이 되자 동문인 대안문을 정문으로 삼았습니다.  1906년에 대안문에서 대한문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970년 태평로를 확장하면서 서쪽으로 물러 앉게 되면서 현재의 위치가 되었습니다.  대한문을 지나 건너게 되는 금천교는 1986년에 발굴하고 복원한 것입니다.

 

*환구단 : 1897년 고종이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으로 바꾸고 왕의 지위를 '황제'로 올리면서, 이를 국내외에 알리고 천지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제단

 

 

 

덕수궁 중화전(中和殿)

2. 중화전(中和殿)

대한민국 보물 제819호

(中和 :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바른 성정)

덕수궁의 *정전(正殿) 으로 중요한 국가 의식을 행하거나 조회를 열던 곳입니다.

1897년 러시아공사관에서 덕수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즉조당을 정전으로 사용했으나 협소하여 1902년 새로운 정전으로 중화전을 지었습니다.  원래는 2층으로 된 중층 건물이었지만 1904년 4월 화재로 인하여 소실된 후 지금의 단층 건물로 중건되었습니다.  앞뜰에 조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문무백관의 위치를 표시하는 품계석이 좌우에 있으며, 중화전의 정문으로 중화문의 있습니다.  특히 중화전을 중화문과 더불어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정전(正殿) : 왕이 나와서 조회를 하던 궁전

 

 

 

 

덕수궁 중화문(中和門)

3. 중화문(中和門)

대한민국 보물 제819호

(中和 :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바른 성정)

덕수궁 정전인 중화전의 정문입니다.  1902년에 건립된 중화전의 정문으로 1904년 덕수궁 대화재로 소실된 후 새로이 만들어 세웠으며, 본래 중화문 좌우에 *행각(行閣)이 있었으나 없어지고 동측에 일부만 남아 있습니다.

 

*행각(行閣) : 궁궐, 절 따위의 정당 앞이나 좌우에 지은 줄행랑

 

 

 

 

덕수궁 함녕전(咸寧殿)

4. 함녕전(咸寧殿)

대한민국 보물 제820호

(咸寧 : 모두가 평안하다)

덕수궁의 황제 침전입니다.  1897년 경복궁의 만화당(萬和堂)을 *이건(移建)하여 만들었으며 함녕전은 고종의 침전으로 사용되었으나, 1904년 함녕전 온돌 수리공사 중 일어난 화재로 함녕전은 물론 덕수궁 내 전각들이 모두 **소실(燒失)되었습니다.  함녕전은 이듬해인 1905년 8월에 ***중건(重建)하였습니다.  이 곳은 1919년 1월 21일 고종이 ****승하(昇遐)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건(移建) : 건축물 따위를 옮겨 짓거나 세움

**소실(燒失) : 불에 타서 사라짐.  또는 그렇게 잃음

***중건(重建) : 절이나 왕궁 따위를 보수하거나 고쳐 지음

*****승하(昇遐) : 임금이나 존귀한 사람이 세상을 떠남을 높여 이르던 말

 

 

 

덕수궁 즉조당(卽阼堂)

5. 즉조당(卽阼堂)

(卽阼 : 즉위(卽位))

즉조는 즉위와 같은 말로 인조가 이곳에서 왕위에 오른 것을 기념하기 위해 붙인 이름입니다.  준명당과 복도로 연결되어 있는 이 건물은 15대 광해군과 16대 인조가 즉위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897년 고종이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한 직후 정전으로 이용하였고, 이때 즉조전의 이름을 중화전, 태극전으로 불렀습니다.  이후 1902년 새로운 정전이 세워지자 다시 즉조당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1904년 덕수궁 대화재 때에 소실되었던 즉조당은 그 해 석어당, 준명당과 함께 건물을 다시 짓고, 1905년 9월 현판을 걸어 완전히 중건하였습니다.  이 곳은 고종의 후비인 순헌황귀비가 1907년부터 1911년 7월 승하할 때까지 생활하던 공간이기도 하며,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습니다.

 

 

 

덕수궁 준명당(浚明堂)

6. 준명당(浚明堂)

(浚明 : 다스려 밝힌다)

이 건물은 창건연대는 알 수 없지만 1904년 화재 때에 소실되었으며, 같은 해에 건물을 다시 짓고, 1905년 8월 현판을 걸어 중건하였습니다.  목조 건물로 즉조당과는 복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고종께서 신하나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곳으로 *의례(儀禮)적 기능을 지닌 건물로 볼 수 있습니다.  함녕전이 지어지기 전까지 고종의 **침전(寢殿)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이 건물은 높은 기단 위에 세워졌고, 정면6칸, 측면 5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좌우 툇간에는 쪽마루가 있습니다.  이후 1916년 4월에는 덕혜옹주 교육을 위한 유치원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의례(儀禮) : 어떤 행사를 치르는 법식이나 정해진 방식에 따라 치르는 행사

**침전(寢殿) : 임금의 침방(寢房 잠자는 방)이 있는 전각

 

 

 

 

 

덕수궁 석어당(昔御堂)

7. 석어당(昔御堂)

(昔御 : 옛날에 임어(臨御 임금이 그 자리에 찾아오다) 하였다)

석어당의 창건연대는 확실치 않습니다.  1904년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같은 해에 건물을 다시 짓고, 1905년 9월 현판을 걸어 완전히 중건하였습니다.  덕수궁의 유일한 중층의 목조 건물로 선조가 임진왜란 중 의주로 피난갔다가 환도한 후 거쳐하셨던 곳이자 1608년 2월 승하한 곳으로 추정됩니다.  이 밖에 광해군이 인목왕후를 *유폐(幽閉) 시켰던 곳, 인조반정이 성공한 뒤 광해군의 죄를 문책한 곳이기도 합니다.  특히 석어당은 단청을 하지 않은 **'백골집'으로 아래층은 정면 8칸, 측면 4칸이며 위층은 정면 6칸, 측면 1칸으로 겹처마에 팔작지붕으로 건물 입니다.

 

*유폐(幽閉) : 아주 깊숙히 가두어 둠

**백골집 : 단청을 하지 않은 궁전이나 아무 칠도 하지 않은 집을 속되게 이르는 말

 

 

 

 

덕수궁 덕홍전(德弘殿)

8. 덕홍전(德弘殿)

(德弘 : 덕이 넓고 크다)

함녕전을 고종의 침전으로 사용할 때 일반 *빈객(賓客) 들을 접견하기 위하여 1906년 건립한 후 1911년에 개조한 전각으로 주로 황제가 외국사신이나 대신들을 만나던 접견실로 쓰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4칸이며 겹처마 팔작지붕의 단층건물로 측면에는 좌우 툇간이 있어서 전체의 평면은 정사각형에 가까운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원래 덕홍전 주위에는 행각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남행각 일부만 함녕전 남행각에 **연접(連接)되어 있습니다.

 

*빈객(賓客) : 귀한 손님

*연접(連接) : 서로 잇닳음.  또는 이어 맞닿게 함

 

 

 

 

덕수궁 광명문(光明門)

9. 광명문(光明門)

(光明 : 밝음을 맞다)

광명문은 고종의 침전이었던 함녕전의 남쪽 대문이다.  1904년 화재 이후 중건되었다가 1930년대에 석조선 서관 남쪽으로 옮겨졌고 그 안에 보루각 자격루와 흥천사 동종 등의 문화재를 전시하였다.  2018년 80여년 만에 제자리를 찾아 암녕전 남쪽으로 옮기고 없어졌던 문과 잡상 등을 복원하였다.  현재 보루각 자격루와 흥천사 동종은 국림문화재연구소에서 보존처리 중이다.

 

 

 

 

덕수궁 정관헌(靜觀軒)

10. 정관헌(靜觀軒)

(靜觀 : 고요히 바라보다)

정관헌은 조선 역대 왕의 초상화인 어진을 봉안했던 장소로 1900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전각은 동서양의 양식을 모두 갖춘 건물로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동양식이며, 건물은 차양칸과 난간을 서양식처럼 꾸몄습니다.  또한 난간에는 사슴, 소나무, 당초, 박쥐 등의 전통 문양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덕수궁 석조전(石造殿)

11. 석조전(石造殿)

(石造 : 돌로 짓다)

조선시대 궁중건물 중 대표적인 유럽풍의 석조 건물로 영국인 "하딩"이 설계 하였고, 1900년 기공되어 1910년에 준공되었다.  고종은 고관대신과 외국사절들을 만나는 용도로 석조전을 사용하였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기 이전까지는 현대미술품을 진열하였으며, 1946년 ~ 1947년 까지 미.소 공동위원회가 사용하였고, 1948년 ~ 1950년에는 유엔 한국위원단이 이곳을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그 후 국립중앙박물관, 궁중유물전시관 등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2009년 문화재청에서 석조전을 1910년 준공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 공사를 진행하여 2014년에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으로 개관하였다

 

 

 

 

덕수궁 석조전 서관 (石造殿 西館)

12. 석조전 서관 (石造殿 西館)

1936년 8월 기공하여 1938년 6월에 준공하였으며 이왕가 미술관으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국립현대무술관 덕수궁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덕수궁 중명전(重明殿)

13. 중명전(重明殿)

(重明 : 광명이 계속 이어져 그치지 않다)

1897년 황실의 도서와 보물을 보관하는 용도의 황실 도서관으로 계획되어 1899년 준공되었다.  한성부 건축기사로 초빙된 미국인 다이의 설계로 1층 서양식 건물로 지어졌다.  1901년 11월 화재로 전소되어 이듬해 회랑이 있는 2층 건물로 재건축되었다.  처음에는 수옥헌(漱玉軒)이라 불렸으나, 1906년경부터 중명전(重明殿)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1904년 4월 고종이 이곳으로 *이어(移御)하면서 **편전(便殿)**폐현(陛見)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이듬해인 1905년 이곳에서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  이후 중명전은 외국인클럽 등 민간 영역에서 활용되면서 내외부가 많이 변형되었다.  2009년까지 문화재청에서는 복원공사를 진행하고, 실내를 전시장으로 개비하여 2010년부터 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어(移御) : 임금이 거처하는 곳을 옮김

**편전(便殿) : 임금이 평상시에 거처하는 궁전

***폐현(陛見) : 황제나 황후를 만나 뵘. 

 

 

 

14. 덕수궁 가는 길

덕수궁에는 주차시설이 없으니, 꼭 대중교통 이용하기~~~~

 

 

 

경복궁 가보기

 

창덕궁 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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